Hero Image of content
자연석 돌담을 쌓는 것처럼 생각하고 글쓰기

글을 쓴다고 해서 살아가면서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단지 가끔 엄청나게 기발하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나 매 순간 느껴졌던 감정과 생각이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운 게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 개발자의 삶을 시작할 때부터, 공부한 내용을 기록하는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더 나은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배운 내용을 정리하자”라는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블로그의 이름은 ‘기술 블로그’였지만, 2년 전부터는 기술 관련 글을 하나도 작성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는 의무적으로 작성해보고 있다.
이제 이 블로그는 회고록이라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근데 사실, 마음 한켠에 “블로그에 글을 써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부담감이 늘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글을 쓰지는 않는다.
글을 쓸 주제가 없는가? 그건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하면서도 나는 배우고 느낀다.
그중에 어떤 건 글로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가끔은 내 옵시디언 블로그 폴더에 제목 정도만 저장해둔다.
그렇게 방치된 글감 소재들은 텅 빈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서 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고민은 한다. 그런데 막상 나를 행동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습성이 하나 있는데, 바로 무엇을 하려고 마음먹으려면 충분한 여유 시간과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 집에 가서 “무언가 해봐야지” 하고 생각해도, “잠들기 전까지 얼마 안 남아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네” 하거나, 체력이 바닥나 꺾인 의지와 졸음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이렇게 늘 의욕만 갖고 헤매다 보니, 도와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글쓰기가 왜 이렇게 부담스럽고 힘든 걸까? 잘 정리된 안내서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찾다가 발견한 책이 바로 ‘와인버그에게 배우는 차곡차곡 글쓰기’였다.

‘와인버그에게 배우는 차곡차곡 글쓰기’가 새로 나왔을 때, 제목에서 흥미를 느낀 부분은 두 가지였다.
바로 ‘배우는’과 ‘차곡차곡’.
글쓰는 방법도 배우고 싶고, 그렇게 차곡차곡 글을 쓰고 싶다는 내 바람에 딱 들어맞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막상 책 목차와 소개 글을 봤을 때 ‘자연석 기법’이라는 말을 보고,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 예상은, 어떤 튜토리얼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대로만 잘 따르면 글 하나쯤은 뚝딱 나오는 그런 내용을 기대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돌아보면, 만약 그 기대대로만 구성되어 있었다면 아마도 금방 덮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쓴 제럴드 M. 와인버그는 글을 참 잘 쓰는 분인데, 그래서인지 책 자체가 꽤 재미있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글쓰기를 배운다면, 곧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연석 돌담 쌓기와 글쓰기가 어떻게 연결되는 개념인지 이해하고 나서는, 꼭 글을 쓰기 위해 돌더미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가면서 드는 생각과 감정을 돌더미처럼 쌓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나 해봐야겠다” 하면서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런 소재도 얻지 못해 의욕까지 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돌더미에 쌓아둘 뿐”이라고 생각하고 사소한 모든 것들을 쌓아둔다.
어제도 아이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면서(사실 아직 그림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떠오른 생각과 갑자기 기억난 할 일들을 스케치북 한켠에 적어뒀다.
보통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결국 돌더미를 쌓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이렇게 하는 게 더 쉽고 재미있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한결 덜어낼 수 있었다.
이제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 감정, 그리고 배운 것들을 그저 ‘돌더미’에 하나씩 쌓아두고, 가끔 이 책에서 말하는 감성적 반응에 따라 글로 풀어볼 생각이다.